With bible

가족 같은 친구를 얻는 길 본문

The church/Key point

가족 같은 친구를 얻는 길

민들레 씨처럼 2018. 6. 6. 22:10

창세기 1:9.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곳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땅 위에 풀과,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 맺는 씨를 가진 과실수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2. 땅이 풀과, 그 종류대로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 맺는 씨를 가진 나무를 내더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13. 저녁과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더라.


아이가 나면서 부터 자신의 부모를 알고, 사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는 부모의 돌봄으로 받으며 성장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를 신뢰를 얻는 것도 관계 속에서 형성됩니다. 


친구를 사귀기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 힘들어 하는 분있었습니다. 그 분은 상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분에게 상대를 이용하려는 뜻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말씀을 들어보니, 성격이 급했습니다. 그 분 스스로가 본인을 알 듯, 상대가 그분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 안에서 상대는 그 분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될 것입니다. 


물론, 관계를 형성할 때, 상대가 원하는 바를 먼저 알고, 그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면서 접근한다면, 보다 빨리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건강한 관계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보았던 당신과 실제 자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는 일은 스트레스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할 때는 진실된 모습으로 상대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보다 나은 상대와 관계를 맺기를 원합니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상대에게 바라는 바는 좋은 성격일 수도 있고, 학벌이나 재산, 재능 또는 외모 등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 또한 건강한 관계로 발전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배경에는 사람의 가치를 물질과 같이 취급하는 유물론적 사상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 사상에 젖어있으면 사람을 가치로 판단하기 때문에, 사람을 물질과 같이 쓰고, 버리는데 일에 거리낌이 없어집니다. 게다가 자신 역시 가치로 판단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저 평가되어 버려지거나, 외면당할 것을 걱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적 가치와는 너무도 다른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세상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위해 보내셨습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 인간의 가치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영혼과 관계를 형성할 때, 예수께서 행하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른다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고민을 해결해 주시면서 자신을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 때, 예수님은 그 심판의 값을, 우리의 속죄의 삯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두려움 가운데 살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겁박하지 않고,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알고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보내심을 따라 세상에 심겨져야 합니다. 이는 세상이 세상의 친구를 사귀는 방식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주님의 뜻을 따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으로 보내졌습니다. 이제 이 현장에서 우리는 상대가 우리를 몰라 주어도 예수님과 같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답답한 반응에도,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도, 그들의 비열함 반응에도 우리는 5리를 가자하면 10리를 함께 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기에 이러한 일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께 받은 사랑이 감사하여, 힘들어도, 수고스러워도, 아프고, 상처가 되어도 이 길을 갈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큰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현장에서 말씀대로 행함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춰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됩니다. 세상의 친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친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관계 형성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드러내시고, 그 위에 씨 가진 채소와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풀어주신 비유에 의하면 땅은 우리의 마음이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위에 물을 주어야 합니다. 성경의 물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행할 때, 이 씨를 또 다른 씨 가진 채소와 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은 것입니다. 


한 주간 세상의 길을 좇아 마음에 견고한 진과 쓴 뿌리는 키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강력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